카테고리 없음

2013 여름 휴가

김당일 2013. 8. 10. 14:53

이제는 아내와 함께하는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 지나 온 세월을 돌아 보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혼자 달려 온 것 같다. 아니, 삶이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 가정 내외와 정인모 권사님 내외가 함께 2013. 8. 6(화)~8(목) 일정으로 홍천 일원에서 휴가를 보냈다.

비발디파크에 숙소를 정하고, 첫날과 마지막 날은 가고 오고, 둘째 날에 홍천 향토사료관과 가령폭포를 관람하였다.

향토사료관의 홍천지역 주민 일상생활문화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은 별다른 특별함이 없으나 무궁화 관련 사료 전시관은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홍천은 암울했던 일제시대에 한서 남궁 억 선생의 주도하에 '무궁화 동산 꾸미기 운동'을 전개하고, 전국에 무궁화를 보급한 지역이었다.

사료관 유물 등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과 안내를 해 준 김종구 님(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장 퇴임)께 감사를 드린다.

홍천 재래시장에서 감자전과 총떡, 칡잎에 싼 옥수수 개떡을 먹고, 올챙이국수로 점심을 하고, 도로변에서 옥수수 맛을 보는 등 향토체험도 하였다.

가령폭포는 내촌면  백암산(1,099m) 기슭에 있는 68m 높이의 홍천 9경 중 제5경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폭포인데 진입로 등 접근 편의시설이 매우 열악하였다.

 

 < 남궁 억 >

1863(철종14)~1939. 서울 종로 생. 독립운동가, 교육가, 언론인, 호는 한서. 강원도 양양군수를 지냈고, 1895년 내부 토목국장이 되어 탑골공원 공사를 맡았다.

1896년 독립협회 창설에 헌신하고 투옥 되었다가 1898년 석방된 바로 그 해에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초대 사장이 되어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과 사회계몽 교육에도 힘썼다.

1918년 자신의 선영이 있는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보리울로 낙향하여 사비를 털어 열 칸짜리 예배당을 짓고 신앙 증대를 통한 민족교육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고,

이 예배당에서 모곡학교가 시작되었다. 모곡학교에서 그는 학생들과 함께 무궁화 묘목을 기르고 '무궁화 동산 꾸미기 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남궁 억은 학교 운영비를 마련한다는 구실로 무궁화 묘목을 해마다 수십만 주씩 길러서 전국의 교회와 학교, 기독교 기관 및 가정 등 온 나라에 보급했다.

이 무렵(1922년)에 남궁 억은 오늘날 기독교 찬송가 580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으로 불리는 시를 작사하였다.

남궁 억은 1903년에 기독교에 입교한 기독교인이었으며, 1913년에는 한국 YMCA 대표를 맡기도 하였고, 이 노래 작사 당시는 장로였다.

남궁 억은 무궁화 노래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후 1939년, 77세의 일기로 소천하였다.

지금은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남궁 억 기념관과 예배당(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되었던 예배당을 복원해 놓았음) 및 묘소(한서초등학교 뒤 유리봉)가 있고,

홍천군청에서 횡성 쪽으로 나와 시내를 벗어나면 오른편에 무궁화 동산이 조성되어 있다.

 

<향토사료관 생활유물 전시실 >

 

 

 

<향토사료관 무궁화 사료 전시실> 

 

 

 

 

 

<향토사료관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내촌면 가령폭포에서>